책
앨런 그린스펀 격동의 시대 : 신세계에서의 모험
세꼴
2009. 9. 26. 00:45

내가 처음 앨런 그린스펀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곳은 일간지의 칼럼란에서 였다. 중학생 혹은 고등학교시절 보았던 칼럼란에서 등장하는 앨런 그린스펀이라는 존재는 찬양의 대상이었다. 경제 대통령, 경제의 신, 미국 경제의 조타수...
그를 찬양하는 문구는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마에스트로(거장)이라는 칭호였다. 경제에 대한 관념도 심지어 주식에 대한 개념도 없었던 나는 얼마나 훌륭하길래 여러 언론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동시에 한 인물에 대한 존경어린 호기심이 피어올랐었다.
불행히도 그에 대한 호기심은 진정한 존경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내가 경제에 대해 관심을 가질 무렵, 그는 낮은 이자율로 거품경기를 키운것에 대해서 한창 비난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앨런 그린스펀 자신이 쓴 회고록이다. 아마 그에 대해 나온 그 수많은 책들보다 이 한권이 앨런 그린스펀이라는 인물에 대해 가장 많은 것을 말해 줄 것이다. 당연한게 아닌가? 라는 의문이 들겠지만 인간이 얼마나 자기기만에 능한지 한번 떠올려 본다면 쉽게 답이 나올것이다.
책에서 그는 자신의 어린시절부터 시작해서 마천루(The Fountainhead)의 작가 '에인 랜드'와의 교류. 스스로의 시각으로 다듬은 세계 경제의 각 분야에 대한 깊은 성찰. 그리고 경제학자로서 최고의 경력이라 할만한 FRB의장 활동까지, 경제학자로서 자신의 모든 것 을 거침없이 담아내고 있다.
상당히 방대한 양임에도 불구하고 군더더기가 느껴지지 않는 내용은 읽는 내내 시간 아까운 줄을 모르게 한다. 동시에 앨런 그린스펀이 이 책을 그저 자기과시용이나 돈벌이 수단으로 작성한 것이 아니라 진실로 자신의 생각을 담아내기 위해 저술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느끼게 해준다.
2008년 전세계를 금융위기가 휩쓸고 지나간 후 그에 대한 비난은 그야 말로 폭발할 지경이었다. 그린스펀에 대한 비난은 앞서 말했듯이 그가 FRB의장 자리를 '대공황'전문가 벤 버냉키에 물려주기 이전부터 상당한 수준이었다. 대체 그를 거장이라 치켜세우며 그린스펀에게 혓바닥을 내밀며 꼬리를 흔들던 자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사실 앨런 그린스펀은 현재의 위기를 어느정도 예감하고 꾸준한 금리인상을 통해서 버냉키에게 충분한 실탄을 건네주었다(최소한 나는 그렇게 보고있다). 그가 이전의 다른 거품들을 키웠냈지만 만약 닷컴버블과 9.11 사태이후 그가 금리를 낮추지 않았다면 상황은 더 나았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만약 그때 그가 금리를 크게 낮추지 않고 경제가 자생적으로 살아나기를 기다렸다면 또 다른 비난이 그를 덮쳤을게 분명하다.
물론 그를 앞장서 비난하진 않겠지만 옹호하기도 쉽지 않은게 사실이다. 어찌되었건 그가 금리인하로 거품을 키워냈었고, 그가 FRB 의장으로서 했어야 할 올바른 일은 비난을 견디면서 경제의 자생력을 보존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의 가장 큰 실책은 다름아닌 규제완화에 있었다. 실상 말이 규제완화였지 외교관의 치외법권 혹은 무소불위의 특권에 가까운 권한강화였다. 그가 최종 결정권자에 위치하지는 않았지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음에도 그는 오히려 그 반대로 움직였었다.
그리고 그로 인한 결과는 시장의 패배였다.
비록 앨런그린스펀의 행위는 용납되기 힘든게 사실이지만, 그것이 이 책의 가치까지 회손시키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앨런 그린스펀이라는 인물 그리고 미국 정치와 세계 경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해 어렴풋 한 실루엣이라도 얻고자 한다면 반드시 일독을 권한다.